일이 삶의 중심이 아닐 때 느끼는 허전함
일이 삶의 중심에서 물러나면, 우리는 자유보다 먼저 허전함을 느낀다.
바쁨이 사라진 자리에는 여유 대신 정체 모를 공백이 남고, 그 공백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제 무엇으로 나를 설명할 것인가.”
오늘은 일이 삶의 중심이 아닐 때 느끼는 허전함에 대해 설명해드릴 예정입니다.

일에서 벗어났는데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꿈꾼다. 일이 삶의 중심이 아닌 상태를. 출근이 줄어들고, 업무에서 한 발 떨어져도 되는 삶. 더 이상 일정에 쫓기지 않고, 메일 알림에 심장이 반응하지 않는 하루. 그래서 막상 일이 삶의 중심에서 내려오면, 당연히 마음이 가벼워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몸은 한결 편해졌는데,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따라온다.
이 허전함은 일을 그리워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일 자체가 좋았다기보다는, 일이 삶의 중심일 때 우리는 덜 고민해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의 목적은 분명했고, 해야 할 일이 있었으며, 그 일을 해내는 나라는 존재가 명확했다. 일이 중심일 때 삶은 단순했다. 힘들어도 이유가 있었고, 지쳐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중심에서 물러나면, 삶은 갑자기 넓어진다. 선택지가 늘어나고, 빈 시간이 생긴다. 문제는 이 여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일이 하루의 뼈대였다면, 이제는 그 뼈대가 사라진 상태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해야 하는지, 어떤 상태를 ‘잘 산 하루’라고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쉬고 있으면서도 쉬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해지고, 괜히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일이 중심이 아닐 때 느끼는 허전함은 여유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사라졌을 때 생기는 감정에 가깝다. 삶을 정렬해 주던 축이 사라지자, 마음은 잠시 균형을 잃는다.
이 허전함은 연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일을 중심으로 삶을 잘 버텨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그 중심이 바뀌는 과정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일을 내려놓자 남겨진 질문들, 그리고 정체성의 흔들림
일이 삶의 중심이 아닐 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전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던 질문들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할 때 시간이 잘 가는가. 바쁠 때는 이런 질문을 사치처럼 미뤄둘 수 있었지만, 일이 중심에서 물러나자 질문들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특히 일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 온 사람일수록 이 흔들림은 크다. 직업, 직함, 역할은 나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언어였다. “무슨 일 해요?”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사회 안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일이 중심이 아니게 되면, 그 언어가 갑자기 부족해진다. 나를 설명할 문장이 짧아지고, 때로는 공백이 생긴다.
이 공백은 곧 허전함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하지 않을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무언가를 중심에 놓고 싶어진다. 새로운 목표, 새로운 계획, 또 다른 바쁨. 허전함을 견디기보다 빠르게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또 다른 중심은, 이전과 다르지 않은 소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이 중심이 아닐 때 느끼는 허전함은, 사실 우리가 아직 ‘일이 없는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나의 성격, 취향, 감각에 대해 충분히 탐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로 자신을 규정해 왔고, ‘어떤 상태의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허전함은 불편하지만, 중요한 신호다. 삶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 그리고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이 질문들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허전함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기 시작한다.
일이 아닌 것으로 삶을 채우는 연습, 허전함과 함께 가는 법
일이 삶의 중심이 아닐 때 느끼는 허전함은, 완전히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감정을 너무 빨리 없애려 할수록, 우리는 또 다른 중심에 매달리게 된다. 중요한 것은 허전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허전함과 함께 살아보는 연습이다.
이 연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허락하는 일, 목적 없는 산책을 해보는 일, 결과로 남지 않아도 좋은 취미를 가지는 일. 처음에는 이런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다 보면, 허전함은 조금씩 다른 감각으로 변한다. 비어 있음이 아니라, 열려 있음에 가까운 상태로.
일이 아닌 것으로 삶을 채운다는 것은, 삶을 가볍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교해진다.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어떤 리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더 어렵고, 더 허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나면, 삶의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된다. 일은 그중 하나로 남고, 관계, 몸의 감각, 사소한 즐거움들이 함께 중심을 이룬다. 이때 허전함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더 이상 불안의 신호가 아니다. 변화의 여백으로 받아들여진다.
일이 삶의 중심이 아닐 때 느끼는 허전함은, 우리가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다. 그 허전함을 서둘러 채우지 않고, 잠시 그대로 두는 용기. 그 용기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일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삶의 구조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일이 중심이 아니어도, 삶은 충분히 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