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바쁨이 사라진 뒤 남는 정체성의 공백

by 꼬꼬밍꿈 2025. 12. 16.

바쁨이 사라진 뒤 남는 정체성의 공백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우리는 종종 이렇게 답한다. “좀 바빠.” 이 짧은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신호이자, 쉽게 파고들지 말라는 방어선이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안도 섞인 확인이다. 바쁘다는 말은 우리를 유능해 보이게 만들고, 뒤처지지 않았다는 감각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바쁨을 자신의 정체성처럼 사용해 왔다.

오늘은 바쁨이 사라진 뒤 남는 정체성의 공백에 대해 설명해드릴 예정입니다.

바쁨이 사라진 뒤 남는 정체성의 공백
바쁨이 사라진 뒤 남는 정체성의 공백

우리는 언제부터 바쁨으로 자신을 설명해 왔을까

바쁨은 질문을 차단한다.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지금의 선택이 나에게 맞는지 같은 질문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일정이 가득 차 있으면 의심할 틈이 없다.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쁨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오랫동안 작동해 온 자기 설명 방식이었다.

하지만 바쁨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일이 줄어들고, 일정이 느슨해지고, 의도하지 않은 여백이 생기면 그동안 잘 작동하던 설명은 힘을 잃는다. 더 이상 “바빠서 그래”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멈춰 서게 된다. 이 순간이 바로 정체성의 공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공백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바쁠 때는 피곤했지만 명확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일을 해내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바쁨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질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전히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즉각적인 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백은 더 크게 느껴진다.

우리는 바쁨이 사라졌을 뿐인데, 마치 나의 일부가 사라진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나’라는 존재를 너무 오랫동안 ‘하는 일’로만 정의해 왔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더 크게 들려오는 자기 의심

바쁨이 사라진 뒤 찾아오는 정체성의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자기 의심의 확장판에 가깝다. 시간이 생기면 편해질 것 같았지만, 막상 아무 일정도 없는 하루 앞에 서면 마음은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진다. 쉬고 있는데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묘한 죄책감으로 남는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할 일도 줄었고, 시간도 있는데 왜 마음이 편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바쁨이 사라지면서, 나를 증명해 주던 근거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성과, 일정, 업무량이 나를 대신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지표가 없다. 그러자 남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부담이다.

특히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공백은 더 크게 다가온다. 늘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괜히 생산적인 무언가를 찾고, 휴식조차 목적이 있어야 허락된다. 그냥 쉬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바라보게 된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도 괜찮은지, 이 여백이 나를 뒤처지게 만들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비교한다. 바쁨이 사라졌는데, 마음속 목소리는 더 시끄러워진다.

정체성의 공백은 결국 우리가 그동안 회피해 왔던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나는 무엇을 하지 않을 때에도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공백을 실패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공백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제 다른 방식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신호에 가깝다.

 

바쁨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일

바쁨이 사라진 뒤 남는 정체성의 공백은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너무 단순한 언어로 나를 설명해 왔다면, 이제는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해진 것이다. 일을 얼마나 하는지 말고, 어떤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엇에 쉽게 기뻐하는지, 어떤 상태에서 편안해지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언어는 처음에는 어색하다.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나는 이런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 “이런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성과가 아닌 감각과 태도로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 공백을 서둘러 채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바쁨으로 공백을 덮어버리면, 잠시 안심할 수는 있겠지만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불편함 속에서만, 일과 분리된 나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단번에 재정의되지 않는다. 바쁨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불안하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아직 과정 중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바쁜 나’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나’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바쁨이 사라진 뒤 남는 정체성의 공백은, 나를 새로 만들라는 요구가 아니라 나를 더 넓게 보라는 신호다. 일하지 않는 순간에도 존재하는 나, 아무 성과가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 나. 그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바쁨은 더 이상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로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바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라고.